참된 공덕은 내면의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불법을 배우는 직접적인 목적은, 부처님이 우리를 구원하는 이러한 행위에 호응하고자 하는 것으로, 그것을 왜곡해서는 안됩니다. 불법을 배우는 것은 결코 인간관계를 넓히기 위해서라던가 삶을 돋보이기 위한 장식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불법을 배우면서도 부처님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지 못하고, 심지어 때로는 몸에 있는 악귀들이 "오! 이 사람이 빛을 발하고 있구나." 하면서 재빨리 그를 막아 불법을 배우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불법을 배우는 것을 장난처럼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죄업이 됩니다.
그래서 문수 보살께서는 우리에게 “부처님께 예배(拜佛)하는 데는 여섯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가운데 두 가지는오히려 죄업(罪業)을 짓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의아해하겠지요. “부처님께 절하는 것도 죄가 됩니까?” 네, 그렇습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하는 절은 당연히 죄가 됩니다. 그리고 참된 불제자라면 출가 수행자를 보면 언제나 공경하는 마음으로 합장(合掌)하고 예의를 갖춰야 합니다. 예를 들어 태국에 가보면, 그곳 사람들은 합장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고 정성스럽습니다. 이것은 그 민족이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쌓아온 수행과 공덕의 결과이지요. 오늘날 우리들 가운데 불법을 배운 거사들은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그런데 길거리에서 어떤 사람은 불법을 모르고 TV나 영화 속의 장면을 떠올리며 길에서 마주친 스님께 한 손 합장을 하고는 "아미타불!" 하고 말합니다. 이런 인사가 과연 공덕이 되겠습니까? 아니죠. 그런 태도는 오히려 죄업을 짓는 것입니다.
부처님께 절을 올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경건한 마음으로 절을 올려야 합니다. 부처님께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내 마음 속 교만과 아집의 산을 무너뜨리고, 부처님의 발 아래 엎드려, 두 손으로 부처님을 받들고, 자신의 얼굴을 그 발에 겸손히 대는 진정한 절입니다. 마음이 산란하고 흐트러진 채 하는 절은 죄업이 됩니다. 그렇다면 절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회하는 마음으로, 성인(聖人)과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절을 해야 합니다. 그럼가장 높은 경지는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대지혜(大智慧)의 마음이며, 이는 나와 대상을 모두 잊어버린 경지를 말합니다. 절하는 '나'도 없고, 절을 받는 '대상'도 없는 인경쌍망(人境雙亡), 주객이 모두 사라진 그 마음으로 절을 올릴 때, 공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그때 올리는 절은 온 대지를 황금으로 빛나게 합니다. 속담에 "사내대장부의 무릎 아래 황금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대대장부는 아무 것에게 무릎 꿇지 않고 진정 존귀한 대상에게만 무릎 꿇는다는 뜻입니다. 존귀한 대상이야 말로 진정한 황금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절을 올릴 때 중요한 것은 수행의 경지, 동기, 마음의 상태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의 경계가 상황을 결정하기 때문이죠. 절을 잘했느냐 못했느냐는, 시주금의 많고 적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경하는 마음, 참회하는 마음으로 1,000원, 100원이라도 올리면 그 공덕이야말로 헤아릴 수 없이 크고 넓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이 "이리 와 봐라, 내가 1억 원 줄 테니. 절이나 지어라!" 라면서 교만한 마음으로 하는 보시는 오히려 죄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하고, 공경하는 무아(無我)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보살이 되어 일체선법(一切善法)을 행할 때는 반드시 삼륜체공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삼륜체공이란 무엇일까요? 첫째는 무아(無我), 즉 ‘나’라는 집착을 버리고, 둘째는 소시공(所施空), 내가 베푸는 모든 것또한 본래 공함을 관하며, 셋째는 수자공(受者空), 받는 상대방, 중생 또한 본래 공함을 관하여 드디어 삼륜이 모두 공할 때, 모든 선법은 부처님의 대지혜 가운데 머무르게 됩니다. 수행은 어떤 이익이 있을까요? 이렇게 수행하면 공덕은 커지고, 그 공덕의 힘에 수많은 중생들이 나에게 인연을 맺고 감화되어 교화(攝受衆生)됩니다. 결국 나와 남을 이롭게 하고 해탈케 하여 함께 성불(成佛)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살은 단 한 가지 행위로도 중생을 제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범부(凡夫)는 어떻습니까? 똑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지혜가 부족하여 곧바로 번뇌가 되기 쉽습니다. 불법을 배우는 것은 자기 안의 지혜를 키우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해야 진정으로 불법을 배운다고 할 수 있으니, 자기 내면의 지혜를 높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수행입니다.